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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승(울산대91)

주님이 주신 사랑의 빚을 갚으려고, 졸업 후 2017년까지 제주와 영남동부 지방회에서 간사로 섬겼습니다. 지금은 아내인 박희 학사(신라대IVF), 세 딸(가은, 소은, 지은)과 함께 서울 변두리에서 살고 있습니다. 개척 2년째인 ‘이음교회’를 목양하면서, ‘가들리 플레이’(godly play: 어린이 영성형성 교육)를 중심으로 온세대 통합 예배를 드립니다. 또한 교구 만드는 일을 하며 행복하게 지내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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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나가 기도하여 이르되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
2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 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
3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의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 보시느니라
4 용사의 활은 꺾이고 넘어진 자는 힘으로 띠를 띠도다
5 풍족하던 자들은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팔고 주리던 자들은 다시 주리지 아니하도다 전에 임신하지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많은 자녀를 둔 자는 쇠약하도다
6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7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8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것들 위에 세우셨도다
9 그가 그의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요 악인들을 흑암 중에서 잠잠하게 하시리니 힘으로는 이길 사람이 없음이로다
10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에서 우레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심판을 내리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 하니라
- 사무엘상 2장 1-10절 (개역개정) -

들어가며: 우리의 현실을 마주하며

간디가 1925년 「Young India」에 실었던 7가지 사회적 악덕에는 ‘노동 없는 부’, ‘양심 없는 쾌락’, ‘인격 없는 지식’, ‘도덕 없는 상업’, ‘인간성 없는 과학’, ‘희생 없는 예배’, ‘원칙 없는 정치’가 있습니다. 이 배경에는 식민 지배를 받던 인도의 정치적 타락과 도덕적 위기가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저는 오늘날 한국교회의 영적•도덕적 위기를 심각하게 봅니다. 청년들이 떠나고 자녀 세대가 교회 예배에 나오지 않는 일은 현상에 불과합니다. 근본적인 원인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현 한국교회의 상황은 암울했던 사사 시대 말기의 이스라엘이 처한 상황과 유사합니다. 복음의 능력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것 같고 복음의 빛은 희미해져 가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이 줄어 들었거나 하나님이 일하시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놀랍게 일하고 계심을 본문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경건한 가정에도 찾아오는 고통

엘가나는 사사 시대 말기에 살았던 레위 지파의 후손으로 매년 가족을 이끌고 실로로 올라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한 가정의 가장이었습니다. 사사 시대 말기의 영적 분위기와 달리 매우 경건한 신앙인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구별되었던 가정이지만 가정 내에 불화가 있었습니다. 엘가나의 두 아내 중 한 명이었던 브닌나가 또 다른 아내인 한나를 괴롭혔습니다. 한나가 아이를 낳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엘가나가 한나를 더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 자녀를 낳지 못하는 일은 사회적 수치였고 하나님의 저주로도 여겼기에, 브닌나는 이런 말들로 한나를 괴롭혔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설 명절 같이 온 가족이 새해를 맞아 하나님을 예배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즐거워할 시간에 한나는 1년 중 가장 큰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고통은 해마다 반복되었습니다.

우리는 경건한 가정에도 불화와 같은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런 고통 앞에서 우리는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고통의 희생자로 여기며 타인을 증오하고 자책하는 시간을 보내거나, 이 고통을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통로로 삼는 것입니다. 한나는 바로 두 번째 길을 선택했고, 그 선택이 이스라엘의 역사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문제 해결이 아닌 하나님을 갈망하는 기도

“그들이 실로에서 먹고 마신 후에 한나가 일어나니….”(삼상1:9) 여기서 ‘일어나니’의 동사는 의지적 결단이 담긴 단어입니다. 더 이상 자신의 고통 속에 주저앉아 울고만 있지 않겠다는 결단입니다. 대신 한나는 하나님께 나아가 자신의 모든 고통과 마음을 쏟아내며 기도합니다. 아무것도 감추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 한나의 기도 내용입니다. 한나는 “하나님, 제게 아들을 주세요. 그러면 제가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제가 브닌나에게 당당해지겠습니다. 사회적으로도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삼상1:11)라고 합니다. 이는 “주님의 것이니 주님께 돌려 드립니다. 저는 주님이 제게 응답해 주시는 것으로 충분합니다”라는 말입니다.

기도 후의 한나는 어떻습니까?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삼상1:18). 아직 실제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는데, 그녀의 얼굴에서 근심이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평안을 주실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한나의 기도를 기억하셨습니다. 그래서 한나는 주신 아들의 이름을 ‘사무엘’이라 지었습니다. '하나님이 들으셨다'라는 뜻이지만, 한나가 경험한 하나님은 ‘들으시는 하나님’임을 분명히 합니다. 이에 한나는 기도 가운데 약속했던 일을 지킵니다. 한나는 사무엘을 데리고 실로로 올라갔습니다.

한나는 사무엘로 인해 브닌나에게 대항할 수 있었고, 행복하고 편안한 삶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나는 복수와 편안함을 선택하지 않고 하나님께 사무엘을 맡기는 믿음의 모험을 선택했습니다. 우리는 편안함을 매우 좋아합니다. “이만하면 됐어. 이 정도로 충분해. 더 이상 모험하지 말고 편안하게 지내자.” 그러나 하나님은 때로 우리를 편안함의 자리에서 불러내십니다. 우리의 안정된 삶을 흔들면서 우리를 깨우고, 그분이 하는 일에 주목하게 하십니다.

한나의 노래: 하나님을 아는 기쁨

사무엘상 1-3장에서 가장 중요한 문단이 있다면 한나의 노래가 담긴 2장 1-10절입니다. 이 한나의 노래이자 기도에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깊이 담겨 있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녀는 단순히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거나 끌어들이지 않았습니다.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1절) 흥미롭게도 한나의 노래에서 사무엘이라는 이름은 한 번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한나가 가장 많이 얘기하고 싶었던 부분은 하나님입니다. 한나의 자랑이 사무엘이 아니라 하나님인 거죠. 한나가 고백하는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며, 비교 불가한 분입니다(2절).

2장 3-8절에서 한나는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말합니다. “강한 자를 낮추시고 약한 자를 높이십니다. 교만한 자를 꺾으시고 겸손한 자를 세우십니다”. 그야말로 하나님은 반전의 하나님이며 기존의 질서를 전복시키는 분입니다. 한나 자신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더 나아가 9-10절에서 한나는 하나님은 땅의 기초를 놓은 창조주이며, 악을 끝장내는 심판자임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확장이 어디까지인지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