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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병선(성신여대84)

사단법인 청년의뜰 대표

사진찍는 일부터 시작해서 영상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은지 20년이 되었다. 그 동안 돈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으며, 현재는 그 고민을 담아 ‘성경적 재정’을 강의하고 있다. 2020년부터는 청년들에게 돈에 관해 교육하는 ‘사단법인 청년의뜰’에서 일하고 있으며, 사회에서 소외된 청년들이 재정 관리 능력을 배울 수 있도록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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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학사운동의 시작

IVF 학사운동은 1970년대 중반부터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학사운동이라기보다 교제 중심의 친목 모임으로, 월 1회 정기적으로 만나는 형태였다. 그러나 1976년부터 주 1회 모임이 시작되며 본격적인 움직임이 일어났고, 1977년 10명의 학사가 첫 학사수련회에 참여하면서 자발적인 헌신이 시작됐다. 이 수련회의 열기는 이후 30명, 60명으로 확산되었고, 학부 시절 받은 영적 도전은 계속해서 졸업 이후로 이어졌다.

이들은 캠퍼스로 돌아가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IVF 공동체를 세우는 일에 헌신했다. IVF가 없는 캠퍼스를 찾아 전도하고 지부를 개척하는 일도 지속되었으며, 이러한 학사들의 자발적인 섬김은 IVF 학생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중요한 디딤돌이 되었다. 당시 간사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학사들의 헌신적인 전도와 양육은 학생운동의 부흥으로 이어졌다.

당시 학사운동은 IVF의 핵심 정신인 ‘지성사회 복음화’를 목표로 삼았다. 대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깊이 있는 사고를 돕는 책과 자료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었고, 이러한 필요 속에서 문서운동이 시작되었다.

문서운동은 성경공부 교재와 소책자 제작에서 출발했다. 69학번 정창남 학사는 주 6일 근무에도 불구하고 매주 토요일 저녁과 주일에 모임을 갖고 학사들과 함께 번역과 자료 제작에 헌신했다. 이러한 노력은 1978년 IVP 설립의 기반이 되었다. IVP는 지성사회 복음화를 꿈꾸는 졸업생들의 헌신 속에서 탄생했으며, 68학번 송인규 간사를 비롯해 74학번과 75그룹의 지속적인 참여와 제작 활동이 출판사의 모태가 되었다.

학사운동은 68학번을 시작으로 70년대 학번들의 헌신 속에서 성장했다. 이들은 전임간사로 헌신하며 캠퍼스 전도를 위해 헌신을 아끼지 않았고, 그 결과 1980년대 학생운동 부흥의 토대를 마련했다. 당시에는 간사와 학사의 구분 없이 복음에 대한 헌신이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선후배 간사를 후원하는 T/S 제도도 이 시기에 정착되었다. 이러한 학사들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서 송인규, 고직한, 남진선, 박영덕, 권영석, 주희재 등의 사역자들이 세워질 수 있었다.

1980-1990년대: 학사운동의 활성화

1980년대 초반부터는 학사운동이 본부 중심에서 각 캠퍼스 중심으로 확산되면서 참여 인원이 증가했다. 학사들은 연 2회 ‘One to One’ 전도집회와 세미나를 열었고, 졸업생 증가에 따라 전체 학사 모임도 지속되었다.

1985년 이후에는 지역별 학사회 활동이 본격화되었다. 서울, 강원, 대구 등에서 지역 모임이 활성화되었고, TCF(기독교사 모임)를 비롯해 예술, 주부, 심리상담 등 다양한 전문 영역 모임이 시작되었다. 일부 전문인 모임은 IVF 학사회를 넘어 독립적인 운동으로 성장하기도 했다.

신입학사 환영회, 계절 수련회, 정기 강연회는 전체 학사를 대상으로 진행되었고, 학교별 모임과 전문인 모임을 병행하는 구조가 형성되었다. 이 시기에는 전임 사역자에 대한 필요성도 논의되기 시작했으며, 전재중 학사를 비롯한 많은 학사들의 헌신이 중심이 되었다.

학사들을 연결하는 소식지 <소리>는 1979년 손글씨로 시작되었다. 단순한 소식 전달을 넘어, 현실 문제를 기독교적 관점에서 성찰하고 공동체의 방향을 고민하는 내용을 담았다. 재정적 어려움으로 세 차례 휴간을 겪었지만, 그때마다 새로운 헌신자들이 나타나 다시 이어갔다. 현재는 PDF 형태로 발행되며 학사들의 후원으로 유지되고 있다.

1988년 11월, 학사회에 처음으로 전임간사가 파송되었다. 한철호 간사의 부임은 학사운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는 1990년을 ‘학사운동 원년’으로 선포하고, 다양한 전문 분야 운동을 활성화했다. 경제·경영, 교사(TCF), 의료(GMFC), 법률, 생명운동, 미디어, 교육, 가정, 선교 등 다양한 영역의 모임이 형성되었고, 일부는 이후 독립적인 사역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가장 활발한 시기에 ‘6개대 사태’가 발생했다. 사회참여와 복음전도 방식에 대한 차이로 인해 여섯 개 대학이 지부에서 제외되었고, 그 여파로 많은 학사들이 공동체를 떠났다. 이는 학사운동 역사상 가장 큰 위기였으며, 운동 전체가 위축되는 계기가 되었다.

2000년대: 변화하는 학사운동

1999년 이후 이재천 간사를 중심으로 학사운동은 다시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공동체 생활에 대한 다양한 실천이 이루어졌고, 디아스포라, 영성캠프, 가족캠프, 직업과 소명 등 다양한 주제의 수련회가 진행되었다. 서울에서는 YGM 모임이 형성되어 직장으로 상경한 학사들에게 관계와 영적 도전을 제공하며 큰 부흥을 이루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각 지역 학사회는 지역 상황에 맞게 다양하게 발전했다. 전국적으로 간사와 협동간사가 배치되었으나, 점차 학사운동은 전문성과 확장성 측면에서 한계에 부딪쳤다. 그 결과, 운동은 전문 영역 확장보다는 교제 중심 모임에 머무르는 경향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