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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엽(중앙대90)
언제 학사회장직을 내려놓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는 학사회장 8년차. 늦깎이 결혼으로 10살 아이를 키우는 50대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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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GC’(East Asia Graduate Conference)를 처음 알게 된 건, 1998년 대회에 참가했던 다른 학교 친구로부터였습니다. 동아시아 지역의 IVFer가 다 모이는 자리였는데 너무도 좋았다고 말이죠. 자작곡이었던 공식 주제가를 MP3 파일로 받아 친구들과 함께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 “In the days of his presence”라는 제목이었을 겁니다. 친구에게 가이드북도 받았습니다. 그렇게 EAGC를 향한 어렴풋한 동경이 생겨났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가 보고 싶었지만, 쉽게 해외로 나갈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금전의 문제도 있었지만, 영어도 형편없었죠(웃음).
어느 날 드디어 기회가 왔습니다. 2007년, 한국에서 EAGC가 개최됐습니다. 회사에 휴가를 요청할 용기가 없어 출퇴근으로 참석했던 기억이 납니다. 주 강사는 무려 ‘마르바 던’(Marva Dawn)이었습니다. 마침 외국계 회사에서 일할 때라, 주최 측에서 동시통역을 제공했는데도 과감하게 영어와 직접 대면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하나도 모르겠습니다(웃음). 나라별로 준비한 전통 문화를 발표하는 시간도 있었는데, 우리나라는 아리랑, 품바 타령 등을 선보였습니다. 같은 소그룹에는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에서 온 친구가 있었습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당시의 제게는 허물지 못한 마음의 벽이 존재했던 듯합니다.
EAGC에 다시 참가하기까지는 많은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2016년 태국 EAGC 준비팀으로부터 ‘직장인의 고민’이라는 주제의 선택식 강의를 부탁받았기에 참가를 결정했습니다. 막 직장인 모임과 대회를 시작하던 시기라서 해당 내용으로 영어 강의를 준비했죠. 세월이 흐르며 미국 회사에서 일한 경험이 쌓였기에 자신만만했지만, 직장에서 터득한 서바이벌식 영어로는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비록 강의는 망했지만(웃음), 이 대회부터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일본 등에서 모인 사람들과 친구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각 나라 간 기독교 문화가 어떻게 다른 지 이야기하고 각자의 힘든 상황도 나누었습니다. 100퍼센트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서로 지지하고 기도하는 마음만으로도 우리가 연결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2016년 태국EAGC에서의 한국팀
세 번째 EAGC는 준비 모임부터 참석했습니다. 마침 한국의 신웅섭 간사님이 동아시아 지역 IFES의 총무였고, 2019년 대회 주최 측인 일본에서 다른 국가 학사들을 준비팀 멤버로 초대하면서 저도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숙소는 1966년 일본 올림픽 때 선수촌으로 사용했던 장소인데, 현재는 청소년 유스호스텔로 탈바꿈했습니다. 나이대별 사용료 할인이 있었기에 주최 측은 젊은 학사들이 많이 참석할 수 있도록 독려했습니다. 주 강사로 크리스 라이스를 모시고 ‘화해와 평화’라는 주제를 다루었는데, 매일 저녁이 울음바다였습니다. 한국은 남북문제를 이야기하며 “북한에 사는 사람도 동포였다”는 내용을 다루어 많은 참석자가 눈물을 흘렸고, 바로 다음 날에는 홍콩팀에서 당시 큰 이슈였던 ‘홍콩 민주화 운동’을 다루어 모두가 울었습니다. 크리스 라이스가 한국과 일본 사이의 응어리를 하나씩 풀어낼 때에도 마음속에서 계속 눈물이 났습니다. 일본의 독특한 기독교 문화를 경험할 기회도 있었는데요, 일본에는 주일을 반드시 개교회에서 지키는 문화가 있습니다. 주일이 되자 일본 참석자들은 각자의 교회로 돌아가 예배를 드렸고, 덕분에 우리도 그들을 따라 지역교회 예배에 참여했습니다.
2019년 일본EAGC에서의 한국팀
이번 대회는 저에게 네 번째 EAGC입니다. 사실 나이도 들고 에너지도 떨어져서 올해는 참석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오랫동안 학사회 일을 하며 마음이 많이 지쳤고, 개인적으로는 코로나를 기점으로 대규모 수련회가 불가능해졌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올봄, 한국에 방문한 말레이시아 학사회 간사 지미(Jimmy Lee)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결국 EAGC에 참석하겠다고 약속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2025년 필리핀EAGC에서의 한국팀
이번 대회에서는 몇 가지 신기한 일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주강사 아넷(전 동아시아지역 IFES 총무)이 선택한 말씀입니다. 아넷이 정한 본문 ‘에스더서’가 올해만 벌써 세 번째로 제게 찾아왔기 때문이죠. 처음에는 QT 본문으로 왔지만 주의 깊게 보지 않았습니다. 다음으로는 교회 목사님이 청년을 대상으로 진행하신 PBS식 설교에서 만났습니다. 그리고 EAGC에서 또다시 조우한 것입니다. 마지막 날 아넷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아넷, 알아요? 올해 에스더만 세 번째예요. 처음에는 이게 메시지인지도 몰랐고, 두 번째에도 나를 향한 말씀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세 번째가 되어서야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들을 수 있었어요. 감사합니다.” 아넷은 웃으며 저에게 한마디 건넸습니다. “하나님의 길을 걸어요.”
점심을 먹으면서 만났던 대만 형제도 기억에 남습니다. 그는 대만 뉴스에서 들은 한국에 대한 내용이 모두 사실이냐고 물어보더군요. 높은 자살률이나, 대학교에 가기 위해서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고등학생들 말이죠. 제가 맞다고 했더니, “한국에는 기독교 인구가 그렇게 많은데, 교회가 무엇을 하고 있느냐”라는 질문까지 이어졌습니다. 부끄럽지만 “한국 기독교는 총체적인 복음보다 개인 구원에 치중하는 반쪽 복음을 전하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제야 그 친구는 이해가 간다면서, 한국을 위해서 기도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잠깐이지만 우리는 그 자리에서 함께 기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