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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병선(성신여대84)

사단법인 청년의뜰 대표

사진찍는 일부터 시작해서 영상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은지 20년이 되었다. 그 동안 돈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으며, 현재는 그 고민을 담아 ‘성경적 재정’을 강의하고 있다. 2020년부터는 청년들에게 돈에 관해 교육하는 ‘사단법인 청년의뜰’에서 일하고 있으며, 사회에서 소외된 청년들이 재정 관리 능력을 배울 수 있도록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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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 정부조차 잡을 수 없는 부동산 불패가 이어지고 있다. 얼마 전, 시사 프로그램에서 한 다주택자가 이런 말을 했다. “저는 버틸 겁니다. 부동산은 보유의 영역이란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또 이렇게도 말했다. “이런 게임을 우리가 한번 해 봤잖아요. 전전 정권에서.” 어느 정도는 그의 말이 맞다. 사람에 따라 부동산은 보유의 영역이자 소유의 영역이다. 누구나 좋은 집에 살고 싶다. 그리고 그 욕망을 현실화하는 것이 자본주의다. 그렇다면 부동산 보유의 무엇이 문제라는 말인가?

아무 문제가 없어야 함에도 어째서인지 마음에 불편함이 남았다. 처음에는 단순히 ‘내가 세상 흐름을 빨리 알아차리지 못해서’라고 생각했다. 더 빨리 준비하지 못해서, 더 과감하지 못해서, 혹은 성경적 재정관으로 고민하느라 용감하게 배팅을 못해서 이런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게 아닐까?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유는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내 불편함의 근원은 “주택 몇 채를 소유하든 개인의 자유다”라는 생각에 담긴 방향성이었다. 말 자체보다, 그 말이 만들어낼 사회의 모습이 두려웠다. 만약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생각한다면 어떻게 될까? 집은 더 이상 ‘살아가는 공간’이 아니라 ‘욕망을 실현하는 수단’이 된다. 더 좋은 입지, 더 높은 가격, 더 많은 보유. 경쟁 속에서 집은 점점 삶과 분리되고, 투기의 수단으로 변모할 수밖에 없다.

지난 20년 동안 서울의 집값은 평균 3억 5천 수준에서 약 12억까지 상승했다. 특정 지역은 8-10억 수준에서 30, 40억을 넘어섰다. 반면 지방은 평균 1억 5천에서 3억까지 상대적으로 완만하게 상승했다. 이 차이는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가능성에 영향을 미친다. 과거에는 빌라에 살든 아파트에 살든, 대출을 받든 안 받든, 전세로 평생 살든 집을 구매하든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선택이 가능했다. 지금은 집값의 격차가 너무 커진 나머지 선택이 무서워지고 있다.

이 상황은 사람들에게 질문이 아니라 자책을 던진다. ‘나는 왜 이 흐름을 보지 못했을까?’ ‘왜 그때 결정하지 못했을까?’ 점점 자신을 향하는 질문은 결국 우리를 무기력에 빠뜨리고 있다. 더 나아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선택의 기준까지 후회의 대상으로 바꾸어 버렸다. 신앙 안에서 열심히 살아온 시간들을 ‘그때 집을 샀어야 했는데’라는 생각으로 뒤집는 순간, 우리는 이미 단순한 경제 문제를 넘어선 지점에 서있다.

몇 년 전에, 친한 IVF 후배로부터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그는 연봉도 꽤 높았고 모아둔 돈도 제법 있었는데 집을 못 샀다. 대출을 해야 집을 살 수 있었는데, 기독교인으로서 몇 억을 대출하는 일이 부담되어 엄두를 못 냈다고 했다. 기독교인이라면 얼마까지 대출을 해야 하는지 기준도 없는 데다가 큰 액수의 대출이 과연 성경적인가 고민을 하다 시기를 놓친 것이다. 내게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묻기에, 나는 “책임질 가족이 있고, 지금까지 모아둔 돈이 있고, 계속해서 일을 할 예정이니 대출을 해도 괜찮다”고 용기를 건넸다. 그리고 무조건 청약을 넣으라고 했다. 무주택 기간이 넉넉히 길고 자녀도 있으니 충분할 것 같았고, 다행히 청약에 당첨되어서 집을 마련하게 됐다.

우리는 그동안 땅에 대해, 집에 대해 많은 강의를 들어왔다. 이제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경적 재정관은 무엇이고 어떤 관점으로 주거를 봐야 하는지, 이 관점이 나의 평생 혹은 자녀에게까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고민해야 할 때가 되었다.

우선, 한국사회에서 집을 사기 위해서는 몇 가지 자기 검증이 필요하다. 이 과정을 거쳐야 집을 살 용기가 생긴다.

첫째, 내게 투기하려는 마음이 있는가?

둘째, 나의 주거 안정성을 갖추려는 행위는 하나님 앞에 믿음이 없는 행동인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해서 안전한 무언가를 마련하려는 욕망이 아닌가?)

셋째, 집 구매가 나의 욕심인가?

넷째, 대출은 어느 선까지 가능한가? (30%면 괜찮고 50%는 괜찮지 않은가?)

사실 우리는 이런 과정을 이미 스스로 거치고 있다. 자신의 결정이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지 아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첫째, 내가 산 집값이 계속 오르길 기도한다면 그것은 투기의 마음이다. 온 나라의 재화가 부동산에 가 있다면 그 나라는 망하고 만다. 현재 한국 자산의 70%가 부동산에 묶여 있기에 한국은 부동산 불패가 되었다. 돈이 일자리를 만들고 사회를 연구하고 사람을 돕는데 사용되지 않는데도 오로지 집값이 오르는 현상에만 만족한다면 너무도 잘못된 일이다.

둘째, 집을 산 뒤 대출받은 원금과 이자 때문에 삶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할 수 없다면 이 또한 너무도 잘못되었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일이 원금과 이자 상환이고, 대출 부담으로 아이를 갖는 일마저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