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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좌담회 참석자 김세종, 노민지, 정선영, 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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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집’은 어떤 의미일까요? 캠퍼스 시절, 공동체 안에서 함께 밥을 먹고 서로의 고민을 나누던 그 ‘함께함’의 기억은 졸업과 동시에 각자의 치열한 삶의 현장으로 흩어졌습니다. 이제는 그 자리에 ‘부동산’이라는 차갑고 거대한 벽이 서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안식처여야 할 집이 누군가에게는 생존을 건 투기의 대상이 되어버린 지금, 우리는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요?

이번 호에서는 익숙한 얼굴의 편집위원들이 모여 진솔한 마음을 꺼내놓았습니다. 정답을 찾기보다 같은 시대를 지나며 때로는 흔들리고 때로는 고민하는 우리들의, 그저 조금 더 길고 깊어진 대화입니다.

1부. 나의 집, 우리의 거처

Q. 먼저 나의 집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떠올리면 어떤 감정이 드시나요?

변지영(이하 지영): 저는 집에서 안정감을 찾고 싶은 마음이 정말 커요. 전세 보증금도 너무 비싸다 보니, 어차피 대출을 껴야 한다면 차라리 내 집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노민지(이하 민지): 집을 생각하면 설레기보다 심란한 게 솔직한 마음이에요. 언제부터 이렇게 됐나 싶기도 하고, 대출 없이는 내 집을 마련할 수 없다는 사실에 현타가 많이 와요.

김세종(이하 세종): 아내와 집을 구하면서 가장 많이 나눈 말이 "쫓겨나지 않는 집을 찾자” 였어요. 아이가 생기면 학교도 보내야 하는데, 2년마다 이사 다니게 할 수는 없으니까요. 집주인 사정으로 조금 싸게 나온 매물이 있어서 대출을 많이 받아 샀는데, 잔금 치르는 날까지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몰라요. ‘오를 집’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가지 않아도 되는 집이 생겼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Q. 혹시 부동산으로 힘들었던 기억이 있나요?

정선영(이하 선영): 저는 어릴 때부터 이사를 열여섯 번 넘게 다녔어요. 전세 난민처럼 살았죠. 그래서 결혼할 때 남편에게 이 삶을 우리 아이들에게는 물려주기 싫다고 했어요. 특히 임신하고 나서는 더 절실해졌죠.

민지: 저랑은 반대네요! 저는 태어나서 한 번도 이사를 안 해 봤어요. 30년을 한 집에 살았으니 솔직히 좀 지겨울 정도예요. 그런데 주변 친구들이 결혼하면서 아파트를 샀다거나 리모델링했다는 얘기를 들으면 묘한 감정이 들어요. 같이 웃고 떠들던 사람들인데, 어느 순간 집으로 인해 삶의 환경이 달라지는 거잖아요.

세종: 저는 월세로 독립을 시작했어요. 공동체 하우스에서 네 명이 함께 살았는데, 월세, 공과금, 난방비까지 매달 거의 백만 원이 나가더라고요. 오래 지속하기 어렵겠다 싶어서 열심히 돈을 모았고, 대출을 받아 반지하 전세로 옮겼습니다. 잠깐 살다 가야지 했는데 그 반지하에서 결국 10년을 채웠네요. 이사하면서 짐을 햇빛에 꺼내 보니 다 꼬질꼬질하더라고요. ‘내가 이렇게 살았구나’ 싶었죠.

지영: 저는 출퇴근 거리가 너무 멀어서 고시원에 살았던 적이 있어요. 코로나 때는 가족과 함께 있는 게 너무 힘들어서 오피스텔을 얻어 독립했는데, 그 과정에서 전세 사기 비슷한 상황을 겪었어요. 2년을 살다가 결혼했고 지금도 전세로 살고 있는데 늘 불안함이 있어요.

Q. 집을 사거나 사지 않기로 결정했던 순간도 있을 텐데요, 어떤 이유가 가장 크게 작용했나요?

세종: 부동산 상승기 때 주변에서 다들 ‘영끌’해서 집을 샀어요. 저는 공동체 하우스를 책임지는 입장이어서 집을 부수고 나만을 위한 선택을 할 수가 없었죠. 그 대신 기도했어요. “나중에 살 집이 필요할 때, 살 수 있는 집이 있으면 좋겠다”고요. 결혼할 때가 되어 돈을 맞춰 보니 어느 정도 자본이 마련되어 있더라고요. 세면서 모았으면 불가능했을 거예요.

선영: 저는 사회 초년생일 때 부동산 상승기를 맞았어요. 어차피 돈이 없어서 투자는 생각도 못 했죠. 사회적 변동이 있는 시점에 내가 어떤 생애 주기를 겪고 있느냐도 영향이 크다는 걸 느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