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de> 😊

문형욱(외국어대06)

캠퍼스에서 하나님 나라를 알게 되어 구도자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마주하는 폭력 앞에서 하나님 나라를 고민하며 현재는 기후정의-동물권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aside>

하나님 나라 여정의 시작

마지막 학기를 다니던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아침 기도 모임을 마치고 간단한 식사를 위해 학생회관 매점으로 향했습니다. 그날 매점에서 뉴스를 통해 마주한 ‘세월호 사건’은 제 삶을 사건 이전과 이후로 바꿔 놓았습니다.

중간 고사를 앞둔 시기였기에, 주변에 연락해 보았지만 함께 진도에 내려 갈 친구가 없었습니다. 포기한 채 먹먹한 주일을 맞았습니다. 마치 아무 일도 없는 듯한 교회 분위기에 놀라 적응하지 못하고 있던 차에, 누군가의 흔들리는 눈을 마주쳤습니다. 반갑고 괴로웠던 그 순간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 친구와 교회에서 세월호 모임을 시작했고, 그렇게 제 삶에서 하나님 나라가 한 걸음 확장되었습니다.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환대하는 하나님 나라, 고통받는 이들의 곁으로 가서 고통에 동참하는 하나님 나라. 책으로만 배웠던 하나님 나라는 세월호 사건을 시작으로 위안부, 농민, 노동자 문제로 점점 확대되었습니다. 물론 교회에서는 비밀 모임이었지요.

그러다 저는 기후 문제를 맞닥뜨렸습니다. 예전부터 기후 위기에 관한 지식은 있었습니다. 대학 시절 폭 넓게 공부하고 싶었던 저는 환경학과 수업을 들었는데, 감사하게도 그 교수님이 기후 위기에 대해 열정적으로 강의해 주셨습니다. 자동차 회사 ’포드’가 이미 전기차 개발이 가능했음에도 시험 운행 이후 정유사의 로비로 개발 중단한 사건을 들며, 기후 위기는 해결 가능하지만 기업의 로비와 같은 이유로 인해 방해받고 있다는 점이나, 정유사가 기름이 깨끗하다는 광고를 보여 주어 이미지 세탁을 하고 있다는 점 등의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뿐이었습니다. 저는 멈춰 있었습니다. 당시 학생이었던 저는 제 역할을 ‘학생’으로 규정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을 따로 설정해 두었습니다. ‘저런 교수님, 활동가들이 있으니 기후위기 문제도 해결 되겠지.’

2018년, 제가 기후 문제를 본격적으로 마주한 계기는 한 기사였습니다. 과학자의 절규가 담긴 기사로, 제목은 ‘최후의 빙하가 녹아내렸다!’였습니다. 글에는 인류 역사상 한 번도 녹은 적 없던 빙산이 녹았으며, 이대로 가면 기후 위기로 인한 여섯 번째 대멸종을 막기 어렵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저는 큰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기후 위기가 잘 해결되고 있는 게 아니었다고?’ 그때부터 저는 기후 위기 시대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살아낸다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기후, 억압, 하나님 나라

이후 제가 속한 단체에서 기후와 연결된 교회실천 프로그램을 제안하는 일, ‘기후 위기 기독교 비상행동’에 참여해 개신교 내 연대를 확장해 나가는 일, ‘기후 위기 기독인 연대’ 라는 단체를 만들어 그리스도인을 조직하고 시민 사회에서 활동하는 일로 나아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로 웨이스트, 대중교통 이용, 채식 밥상 같은 개인 실천부터 정책 제안과 제도 개선 운동, 정부와 시민에게 기후 위기를 알리는 시민 행진, 송전탑•4대강•신공항건설•홍천 양수발전소 등 생태계 개발 현장과 연대하고 마주하는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개인 실천만으로는 기후 위기에 영향을 줄 수 없다는 생각으로 제도를 개선하고 직접 목소리를 내는 운동에도 참여했습니다. 그러나 제도 개선 운동은 결국 정책 결정자를 설득하고 압박해야 하기 때문에 시민 운동 또한 중요하다는 사실 또한 확인하게 됐습니다. 저에게 시민의 목소리를 키우는 일은 그리스도인이 이 문제에 참여하도록 하는 일과 같습니다. 이는 곧 문제를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내는 일로 이어졌습니다.

기후 위기는 단순히 하나의 문제가 아닙니다. 탄소배출량 문제는 생산과 소비 시스템을  빼 놓고 이야기 할 수 없고, 시스템 문제를 말하면서 남성 중심 수직적 문화를 빼 놓을 수 없습니다. 기후 위기를 넘어선 체제와 새로운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재생 에너지로 지속해서 성장하는 사회가 아니라 성장을 줄이고 생태계와 비인간 동물도 공존하는 사회를 고민해야 합니다.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연결된 모든 문제가 서로 만나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새로운 세상은 곧 하나님 나라일 것입니다.  새로운 세상을 갈망하는 주체는 자신들이 마주한 폭력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 이 땅 위에 하나님 나라,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향한 환대하는  공동체, 어린아이가 독사굴에 손을 넣어도 안전하고 사자와 어린 양이 뛰 노는 곳. 성서가 말하는 하나님 나라는 억압받고 고통받는 이스라엘 민족이 꿈꾸던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2025년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 나라는 무엇일까요? 지금 벌어지는 억압 아래 고통받고 있는 이들이 꿈꾸는 나라가 하나님 나라일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하나님 나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