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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경희대09)
알레르기가 심하지만 고양이와 살고, F이지만 T인 반려인과 살고 있습니다. 겁이 많지만 용기 내어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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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 고양이와 학사님
지난 2025년 9월 27일, 기후정의 행진이 있던 광화문 앞 거리는 수많은 깃발로 가득 찼습니다. 그중 작은 주먹을 불끈 쥐고 노래하는 달팽이 깃발 아래, ‘더불어숲평화교회’ 교인들이 모였습니다. 교회 소모임 중 하나인 ‘더불어 탈성장’에서 만든 깃발입니다. 달팽이는 적정 크기에 이르면 성장을 멈추고 그 상태로 일생을 살아갑니다. 더 이상의 성장은 이익이 아니라 오히려 부담과 과부하가 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달팽이는 탈성장 운동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탈성장 운동을 기쁘게, 하지만 만만치 않게 해 보자는 의미로, 싱글거리는 달팽이를 깃발에 그려 넣었습니다.
광장에서 보니 더 반가운 얼굴들이었습니다. 직접 만들어 온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행진했습니다. 꽤 무거운 달팽이 깃발은 서로 들겠다는 호소 속에 이 손 저 손으로 옮겨 다니며 신나게 춤추듯 펄럭였습니다. 1년 전 가을에는 홀로 우울해하며 기후 위기에 절망했는데, 이제는 함께 기후정의를 기쁘게 외칠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절망 중에 만난 탈성장 운동
몇 년 동안 저는 우울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세상은 무의미해 보였고, 멸망이 코앞인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우울의 이유 중 하나가 환경 문제였습니다. 제가 만드는 책의 독자인 어린이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또 결혼 후 출산을 고민하면서, 다음 세대는 어떤 세상을 살게 될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기후 위기는 목에 걸린 가시처럼 매 순간 생생하게 감각되었습니다. 생활하며 쓰레기를 만들지 않을 수 없어 죄책감이 들었고, 아무리 노력해도 기후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는 생각에 무기력했습니다.
슬픔은 오래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계속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절망과 포기라는 결론으로 마침표를 찍기 전, 한 번만 더 제대로 알아보고 실천해 보자는 마음으로 노회찬재단에서 하는 ‘탈성장 세미나’에 참석했습니다. 5개월간 책을 읽고 강의를 들으며 알게 된 탈성장 이야기는 캠퍼스에서 IVF를 하며 배운 하나님 나라의 메시지와 비슷했습니다.
성장의 한계를 인식하고, 세계 속에서 인간의 위치를 바라보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탈성장의 주장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다르지 않게 들렸습니다. 또한 자본주의에 의해 빼앗긴 ‘커먼즈(공공의 자원)’를 모두를 위해 사용하고 가꾸자는 것도 구약의 희년을 떠올리게 했지요. 개인적인 실천에만 머무르지 않고 연대하여 지금 여기에서 유토피아(나우토피아)를 살자는 제안도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 하나님 나라를 일구어야 하는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사명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들의 나우토피아 시작하기
기후 위기 시대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는 데, 탈성장 운동이 구체적인 힌트를 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가 나우토피아를 시작하기 좋은, 돌봄과 나눔의 씨앗을 품은 곳이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내향인에 말재주 없는 성격이지만 교회에 ‘더불어 탈성장’ 소모임을 만들고 ‘앞잡이’를 닉네임으로 삼았습니다. 앞잡이가 서투르고 아는 게 별로 없어도, 넉넉한 마음으로 함께해 줄 공동체라는 신뢰가 있어 모임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24년 10월 27일 첫 모임에 생각보다 많은 분이 참여해 주셨습니다. 모두에게 낯선 ‘탈성장’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적을수록 풍요롭다』라는 책을 함께 읽으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후 달에 한 번 정도 모여 다양한 활동을 했습니다. 채식 요리를 함께 만들어 먹은 후 다큐멘터리를 시청하기도 하고, 제로웨이스트 상점을 방문하거나 바느질 수선 모임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각자 환경을 위해 실천하고 있던 방법들을 공유하며 서로 배웠고, 중고 의류 판매점이나 채식 식당, 제로웨이스트 가게 등의 정보를 나누며 탈성장 생활 반경을 넓힐 수 있었습니다.
소모임에서 매번 활동을 기획하기는 힘들었기에 다른 단체의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관심을 기울여 찾아보니 우리의 참여와 연대를 기다리는 활동이 많았습니다. 또 그만큼 기후와 환경을 위해 힘 쏟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함께 간 북토크에서 기후정의를 위해 애쓰는 교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탈핵 주간 연합 예배와 기후 위기를 위한 걷기기도회에도 참여해 새로운 방식으로 예배와 기도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탈성장 모임을 하면서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기후 위기의 책임과 해결을 시스템에 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모임원들은 여전히 물티슈 대신 손수건을 가지고 다니고 채식을 지향하는 등 여러 방면으로 노력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무한 성장을 외치며 사람과 자연을 착취하는 기업, 그리고 탐욕적인 자본의 원리에 따라 불평등을 키우는 정부에 대해 더 열심히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더 이상 개인으로 고립되어 우울에 빠지지 않고, 공동체로, 연대한 시민으로 세상을 바꾸는 상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지난 가을, 광화문 광장에 모인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