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ri230_1702_괴담의시대어떻게해야할까.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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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문 (외국어대81)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예비 예술인이 외대에서 아랍어를 그렸다. 그리고 그 이후 지금까지 아랍 세계와 관계이웃 삼으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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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이 가득한 시대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국정조사특위)에 증인으로 나온 이들의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은 모두 똑같았다. “생각이 나지 않는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실이 아니다”라는 식의 상투적인 거짓말이었다. 지금 한국사회는 더 이상 진실이 의미 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것 같다. 마치 강한 것이 진실인 양, 약자의 진실은 무의미한 것인 양, 당당하게 거짓을 만들고 유포하고 강변하는 시대인 것 같다. 거짓말 탐지기를 갖다 놓는다 하여도 거짓으로 판명되지 않을 만큼, 거짓에 심취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 시대는 ‘괴담’이 가득하다. 괴담은 두 가지 측면 을 갖고 있다. 하나는 힘 있는 자들이 괴담이라 낙인찍은 진실이고, 다른 하나는 힘 있는 이들이 거짓을 퍼뜨리기 위하여 조작한 것이다.

진실을 찾고자 합리적 근거에 바탕을 둔 의심을 제 기할 때면, 힘 있는 자들은 으레 ‘괴담’이라는 명목의 낙인을 찍었다. 이 괴담은 아주 오래 전에 유언 비어라 불리던 ‘진실’의 다른 이름을 연상시킨다. 너무나 많은 진실이 유언비어로 내몰렸다. 진실을 알리고자 했던 이들은, 유언비어를 퍼뜨린 혐의로 처벌을 받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괴담은 유언비어를 닮았다. 물론 괴담으로 내몰린 주장들 가운데는 전혀 사실에 기반을 두지 않은 억지스러운 추론들도 뒤섞여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진실을 감추기 위해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아니면 습관적으로 만들어 퍼뜨리는 괴담이 있다. 이 괴담은 악성 괴담이다. 때때로 조악한 괴담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는 진실의 모양을 완전히 갖추고 있다. 육하원칙의 형식을 갖추고, 친절하게 관련 증거(?) 사진까지 넣어서 퍼뜨린다. 이렇게 정교한 괴담은 다수의 상식과 이성을 갖춘 이들 조차 거짓을 진실인 것처럼 받아들이게 한다. 그러나 조악한 수준의 괴담조차도 철저하게 진실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이들이 괴담 유포의 가장 중요한 목표물인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나는 현 사회를 괴담이 넘치는 사회로 표현하고 싶다. 그런데 안타깝지만, 괴담의 생산, 유포 과정에 가장 중요한 몫을 다하고 있는 공간이 바로 한국교회라고 판단한다. 다소 단정에 가까운 이 같은 확신은 이슬람 괴담의 유통 경로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이 괴담의 진원지를 따라가다 보면, ‘주님의 신부’ 같은 식의 이름을 사용하는 개인 또는 단체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다른 한 축으로는 극우적 성향을 물씬 풍기는 아이디를 가진 이들이었다. 교회 안팎의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클럽은 괴담 원산지 세탁의 중요한 경로인 듯했다. 한국교회의 정치적 보수화 덕분인지 괴담은 너무 손쉽게 퍼뜨려졌다. 아니면 괴담 때문에 한국교회가 정치적 보수화 경향이 강화된 것인지, 선후관계는 잘 모르겠다.

북한의 남침 땅굴이 남한 곳곳에 존재한다는 땅굴 괴담, 좀비처럼 꾸준히 살아나는 5.18 광주민주화 항쟁 당시 북한군 특수 부대가 파견되었다는 괴담, 국정교과서 지지 목소리 한복판에는 기독교인들이 자리 잡고 있다. 어버이연합, 엄마부대 등의 보수성 향의 단체들의 활동에도 기독교 쪽의 협력이 엿보인다. 결정적인 순간만 되면, 아니 극우적 보수에 힘을 실어줄 순간이다 싶으면, 로마서 13장을 들먹이며 정교분리를 외치는 교계 목소리는 여전히 낯설기만 하다. 그런데 이런 목소리를 퍼뜨리는 매개가 ‘카카오톡’ 같은 공간이다. 그래서 카카오톡에 물든 한국교회를 ‘카톡교’라고 일컫는 지경에 이르렀다.

괴담의 생성 과정과 팩트 체크

현 시국과 관련하여서도 수많은 괴담과 거짓 루머를 퍼뜨리고 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도 “오보 괴담 바로잡기: 이것이 팩트입니다!”라는 코너를 운영할 정도이다.

괴담이 어떻게 생성되고 유포되는지 가장 일반적인 과정은 이렇다. 굳이 단계를 구분하자면 괴담 생산자, 괴담 가공자, 괴담 유통자, 괴담 소비자 등으 로 나눌 수 있다. 괴담 생산자는 직접 생산자와 생산, 가공을 병행하는 경우로 구분할 수 있다. 초기 단순 괴담 유포자의 괴담을 정교하게 재가공하여 퍼뜨리는 경우와 초기 괴담 유포자와 가공자가 동일 인물인 경우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괴담 생산자가 누구이든, 어떤 경로이든, 가공 라인을 통해 괴담은 더욱 정교해진다. 그런데 무엇보다 중요한 과정은 괴담 유통 라인이다.

수년 전에는 ‘다음 아고라’ 같은 공간을 통해 가짜뉴스 또는 괴담의 출처를 세탁하고(많은 경우 초기 게시글의 링크는 사라지곤 한다), 그것을 온라인 공간에 재공유하는 식이었다. 요즘은 카카오톡이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매개 역할을 하고 있다. ‘복사하기’ 기능만 활용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카톡 공유 과정에 오래 전 행운의 편지 같은 기법이 첨가되기도 한다. “긴급”이라느니 “주변에 몇 사람 이상에게 퍼뜨려 주세요” 와 같은 요청이 담기는 것이다. 정말이지 카카오톡이나 다른 매개를 통한 괴담의 유포 과정은 하도급과 다단계 시스템이 잘 조화된 것 같다. 여기서 겨자씨 비유와 달란트 비유가 떠오른다. 한 사람이 뿌린 괴담 하나가 순식간에 수십만 명, 수백만 명에게 전파되기도 하니까.

이제 잘 알려진 괴담에 대한 ‘팩트 체크’와 사실 발굴을 통해 확인한 괴담의 예를 들어 보고자 한다. 괴담에 대한 팩트 체크 과정은 합리적 근거에 바탕을 둔 의심을 제기하는 연속과정이다.

#피해자에게는 무죄추정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저 기원전 2700년 함무라비 법정에서도 인정되고 있다”는 주장 왜곡 의혹

지난 1월 5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박 대통령 탄핵심판사건 2차 변론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탄 핵심판사건 법률대리인단 중 한 명인 서석구 변호사의 발언 가운데 한 대목이다. 서 변호사의 이 논증을 접하면서 짚어봐야 할 팩트에는 무엇이 있을까? 서 변호사의 저 말이 ‘함무라비 법’을 제대로 인용한 것인지, 실제로 ‘함무라비 법’을 읽고서 인용한 것인지 짚어봐야 한다. 이것은 글쓰기나 말 인용에 기본인 일차 자료 검증이고, 팩트 체크의 바탕인 합리적 의심의 표출이다.

이 주장에 대한 사실 확인은 간단하다. 그러나 고대 문헌을 짚어봐야 하는 조금 번거로운 수고는 피할 길이 없다. 함무라비 법전은, ‘기원전 1792년에서 1750년에 바빌론을 통치한 함무라비 왕이 반포한 고대 바빌로니아의 법전’이다. 최대한 양보해서 서 변호사가 함무라비 법을 알고 있다고 믿어주고 그의 말을 이해한다면, 그가 흥분하거나 당황해서 관련 연도를 헷갈린 것(?)이라고 변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감싸기도 근거가 없다. 그것은 두 번째 문헌 확인을 통해 나오는 가볍게 나오는 결론 덕분이다. 함무라비 법은 모두 282조항으로 구 성되어 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재판정 관련 조항은 1-5항에 강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