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ri211_1312_이념갈등과기독전문인단체의역할.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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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오 (좋은교사운동)

대학에서 윤리교육을 전공한 후 청운중, 장충여중, 양화중, 문래중 등에서 도덕을 가르쳤다. 기독교사들의 연합모임 인 "좋은 교사 운동” 을 창립하고 대표를 맡아 섬기느라 오랫동안 학교현장을 떠나 있었고, 2014년 3월 복직예정이다. 저서로는《시대를 뒤서 가는 사람》《하나님 앞에서 공부하는 아이》《선생님은 너를 응원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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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교사운동”은 크고 작은, 그리고 다양한 신앙의 색깔을 가진 14개 기독교사 단체의 연합체이다. 개별 단체로만 활동을 하던 몇몇 단체 대표들이 연합을 논의하기 위해 처음으로 모였을 때가 생각이 난다. ‘연합’이라는 대의에는 동의를 하여 그 자리에 나왔지만 각 단체의 색깔을 알기 때문에 서로 경계하는 눈초리가 역력했다. 하나되기에 ‘기독’이라는 측면에서 스펙트럼이 너무 넓었지만, ‘교사’라는측면에서는 공통점이 많았다. 교사로서 학교 현장에서 느끼는 우리 교육의 아픔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바로 형성이 되었고, 이 아픔에 대해 기독교적으로 제대로 응답하기 위해서는 힘을 합해야 한다는 면에서 곧바로 합의에 이를 수 있었다.

전교조, 가입해야 돼? 하면 안 돼?

이렇게 시작된 기독교사연합이 처음으로 직면한 도전은 1999년 전교조 합법화 상황이었다. 즉, 전교조가 교단에서 합법단체로 인정이 되면서 많은 기독교사들은 전교조를 어떻게 봐야 하고 가입을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질문을 던져왔다. 당시 우리 내부에는 교총 회원도 있었고 전교조 조합원도 있었다. 그리고 어디에도 가입은 안 했지만 보수 성향의 선생님과 진보 성향의 선생님이 공존하고 있었다. 많은 논의 끝에 우선 전교조에 가입하든 교총에 가입하든 그것은 개인의 자유의사에 달린 문제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기독교사’에 두고, 교총회원이나 전교조 조합원은 부차적인 정체성으로 가질 것을 권고했다. 그리고 교총이나 전교조 활동을 하되, 그 조직이 요구하는 것을 무조건 따를 것이 아니라 그 내부에서 그 조직이 아이들과 교육을 위한 단체로서 가도록 건강한 비판 세력으로서의 역할을 할 것을 권장했다.

이와 동시에 기독교사연합이 이 시대 교육의 위기 가운데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를 찾기 시작했다. 기독교사단체들은 지금까지 기독교사를 돌보는 목양공동체로서, 그리고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단체로서의 역할은 잘 감당해왔지만, 우리 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교육운동체로서의 역할은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다는 인식을 하였다. 그렇지만 한국 교육문제 전체에 대한대안을 제시하기에는우리의 역량이 부족했다. 그괘서 우리가잘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전체 교육운동의 빈 부분이 무엇인지 찾기 시작했다.

그래서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더 헌신하고 학부모와 소통하는 ‘좋은교사’운동을 전개하기로 하고, 구체적 실천방안으로 ‘가정방문’, ‘일대일 결연’, ‘수업평가받기’등의 운동을 전개했다. 이러한 운동은 구조와 제도 변혁에만 집중해 있던 교육운동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고, 학부모나 일반국민들로부터 많은 환영을 받았다. 기독교사 내부적으로도 정치나 이념의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 기독교적 정체성과 강점을충분히 드러낼 수 있는 방식의 교육 운동이 능하다는 자신감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다.

도대체 기독교적 교육정책이 뭐야?

하지만 교육이라는 영역 자체가 순수하게 이념이나 정치를 떠난 진공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정치와 이념의 영향을 받은 현실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좋은교사운동도 그 영향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우선 학교 현장에는 늘 새로운 정책들이 하달되고, 그것을 실행해야 하는 교사들로서는 그것을 어떻게 판단해야 하며, 그것을 적극적으로 따라야 하는 것인지 소극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거부해야 하는 것인지 늘 판단이 요구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언론에서도 정책 사안들에 대해 좋은교사운동의 입장을 물어오기 때문에 어떤 식이든 답을 해야하는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적 판단은 정치적, 이념적 판단이 섞이지 않을 수 없는 영역이고, 좋은교사운동 내부에서도 정치성향 면에서는 진보와 보수가 공존하기 때문에 어떤 판단을 내리든 내부 분열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이 상황 가운데서 좋은교사운동은 ‘기독교사’라는 우리의 정체성에 근거해서 ‘기독교적 교육정책’ 을 판단하는 기준을 만들기로 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많은 논의 끝에 몇 가지 기준을 마련했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우리의 상황을 뛰어넘는 자기 초월성’이었다. 모든 조직이나 단체는 자신들이 설정한 이념 혹은 조직 구성원들의 이해관계에 따른 판단을 하지만, 기독교는 절대자 하나님 앞에서 모든 것을 상대화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원리를 적용해서 어떤 교육정책이 나오든 기존의 보수와 진보의 관점을 내려 놓고, 실사구시적으로 이것이 과연 아이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며 얼마나 교육적인가 하는 관점으로 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우리가 ‘기독’, ‘교사’모임이기 때문에 교사의 이해관계도 내려놓아야 하고, 복음적 원칙은 고수하되 조직으로서 교회의 이해관계도 내려놓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모든 인간은 한계를 지닌 존재라 각자 가지고 있는 생각과 이해관계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이런 부분은 토론을 통해 또 같이 기도하면서 극복하고자 했다.

교원평가와 사립학교법 논쟁

이러한 기준을 가지고 첫 번째로 맞닥뜨린 문제가 2005년에 있었던 ‘교원평가’ 문제였다. 당시 교원평가 문제는 전교조와 교총이 같이 반대를 하는 상황이었다. 전교조와 교총이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의 차이는 있지만 교사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면에서 하나가 된 것이다. 물론 정책은 복잡한 것이어서 구호나 명분으로만 접근할 수 없고 구체적인 내용으로 접근해야 했고 이런 면에서 당시 정부가 내세운 교원평가안은 많은 문제점이 있었다. 또 교원평가와 함께 도입해야할 다른 여건의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은 문제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교사운동에서는교사의 이해관계를 내려놓고 학생과 학부모의 입장에서 볼 때, 또 구체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지금 큰 틀에서 교원평가를 도입하는 것이 교사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 회복이나 전체 교육발전을 위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렇게해서 교원 사회 내에서는 많은 비판을 받았고, 심지어 우리 회원 가운데 일부가 탈퇴하는 아픔을 감내해야 했다. 돌아보면 당시 교원평가에 대한 좋은교사운동의 판단은 우리 교육 발전에 기여한 행동이었다는 안팎의 평가를 받고 있다.

그즈음 또 하나 이슈가 된 것이 사학법 개정 문제였다. 당시 정부는 사학의 공공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사학 이사회에 개방이사를 포함시키고 외부 감사를 받게 하며, 친인척이 학교장을 못하게 하는 등의 내용을 담아 통과시켰다. 이에 대해 기독교계 사립학교들이 크게 반발했고, 주요 교단 임원들은 종교탄압이라는 논리로 삭발까지 하면서 반발을 했다. 그때, 좋은교사운동은 기독교계 사립 가운데 공공성과 투명성을 바탕으로 모범적인 운영을 하는 학교도 많지만 그렇지 않음으로 인해 교육계의 걸림돌이 되고 복음전파의 장애가 되는 학교도 많다는 전제 하에 개정사립학교법이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을 했다. 그래서 주류 교계의 흐름과는 반대로 개정사립학교법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에 섰다. 이로 인해 주류 교단으로부터 ‘전교조 아류’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교계가 정치적 이슈에 대해 일부 비전문가 목회자들의 편향된 이념에 좌우되는 잘못된 현실 가운데서 기독교인 전문가 그룹이 적절한 분석과 판단을 내놓은 사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럼 좋은교사운동의 색깔은 뭐야?

이념을 따른 편가르기와 줄세우기에 빠른 언론들은 혼란스러워한다. 좋은교사운동이 어떤 때는 전교조와 비슷한 주장을 하다가 또 다른 사안에 대해서는 교총과 비슷한 주장을 하기도 하고, 또 많은 경우, 전교조와 교총의 교사 이기주의를 비판하면서 학부모 단체들과 보조를 같이 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번은 좋은교사운동이 어떤 사안에 대한 논평을 냈는데 이를 보도하면서 동아일보는 “진보 단체인 좋은교사운동은…”이라고 썼고, 한겨레신문 은 “중도 단체인 좋은교사운동은...”, 오마이뉴스는 “보수 단체인 좋은교사운동은... ”이라고 기사를쓴 것을 보고 웃은 적이 있다. 그것은 어쩌면 좋은교사운동의 이념적 지향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념적 지향을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좋은교사운동이 아무런 중심도 없이 왔다 갔다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좋은교사운동에는분명한 자기중심이 있기 때문에 이념이나 이해관계에 따른 줄서기를 하지 않고 각각의 사안에 맞는분석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국회나 교육부 관계자에게서 자신들의 입법 과정이나 정책 결정과정에 좋은교사운동이 어떤 입장을 내놓는지 매우 중요하게 보고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다른 교원단체들은 자신들의 이념에 따라 판단하기 때문에 논평 내용을 짐작할 수 있지만 좋은교사운동은 가장 아이들중심, 교육중심의 판단을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념의 시대, 교회가 밖에 버려지지 않으려면

오늘날 한국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이념적 편가르기와 분열로 몸살을 앓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이념적 대립을 넘어 갈등을 중재하고 화해와 중보자의 역할을 해야 하는 교회 역시 이러한 이념 갈등의 당사자가 되거나 선봉에 서있다는 것이다. 신앙은 모든 이념과 이해 관계를 초월 할 수 있는 능력인데, 이러한 신앙의 능력을 스스로 버리고 이념과 이해관계의 논리에 굴복하고 있는 모습은 이념 분열로 몸살을 앓고 있는 세상을 치유하지 못하고 결국 아무 쓸 데 없어 발에 밟히게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