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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욱 (대구대97, 대구가톨릭대 한의대 담당 간사) 5년차 간사. 두 아이와 두 캠퍼스 사역의 버거움 속에서도 일상에서의 하나님 나라를 기대하며 미소를 잃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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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K는 빨간색이다
“빨갛게 빨갛게 물들었네〜” 요즘 막내딸이 어린이집에서 열심히 배우는 노래이다. 가을의 정취를 노래한 이 노래를 요즘 시대에 부르고 있노라면, 가을의 정취는 고사하고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어떤 곳인지 새삼 느끼게 한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바로 보수의 중심, 대구이다.
작년 지방선거와 대통령 선거의 결과는 내 기대를 완전히 저버리고 빨갛게 물들어 주었다. 대구 뿐만 아니라 대구 지역 캠퍼스 학생들 대부분이 유입되는 경북에서 조차도 빨갛게 물들어 버렸다. 포항에 가면 어떤 분의 생가가 있고, 정권이 교체되자마자 대구의 중심 동성로 한 중앙에 현 대 통령의 생가 팻말이 생겼다. TK는 대대로 보수의 아이콘, 보수의 중심이며, 빨강의 원조 격이라고 말할 수 있다. 소위 좌빨, 좌빨 하는데 듣는 우빨은 기분이 나쁘다.
지난해는 내가 서있는 곳이 어떤 곳인지 새삼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내가 어떻게 이 정치적인 문제를 바라봐야 하는지 고민하고 공부하는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정치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신문을 봐도 헤드라인만 겨우 읽어 내려갔었는데 MB정권이 들어서면서 실제로 부딪히는 문제들이 다 정치와 관련된 문제들이었다. 보육료나 병원비 문제 등 실생활에서 영향을 받다 보니 자연스럽게 정치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실생활과 밀접한 부분들을 알아보고, 공부한 결과물을 가지고 교회 청년 대상으로 강의까지 했으니, 나름 정치에 관심을 많이 가지긴 했나 보다.
여전히 우리 부모님은 절대적으로 빨간색이다. 조금의 여지도 없다. 뒤도 돌아보시지 않는다. 종교처럼,이들을 향한 믿음은 절대적이다. 맹신 과도 같다. 부모님 세대의 이 붉은 애정라인은 쉽사리 변하지 않을 전망이다. 여전히 TK는 빨갛다.
장치가 뭐꼬??
캠퍼스에서 사역하고 있는 나의 주된 교제권은 대학생들이다. 주 5일을 학생들과 함께 뒹군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신앙 상담이 주를 이루지만 작년 한 해는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 것 같다. 학생들을 만나보면 대부분 자신의 정치적 소신이나 견해 같은 것이 없다. 어디서 들은 이야기, 부모님 이 말씀하시는 내용을 가지고 마치 그것이 자신의 견해인 양 이야기한다. 그럴 듯하게 포장되어 있는 것 같지만 조금만 더 파고들면 “잘 모르겠어요”라고 말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간사인 내 의견이 굉장히 비중 있게 전달되거나 전부인 것처럼 전해질 때가 있어서 사실 정치 이야기를 하는 것은 부담스럽고 조심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라고 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우리 삶의 거의 모든 내용이 정치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대학생들에게 정치를 물어보면 답이 없다. 묵묵부답이다. 사회에 대한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이다. 오히려 응사( 드라마 <응답하라1994>의 준말) 이야기나 <무한도전>,<런닝맨> 과 같은 예능 프로에 더 관심이 많다. 비단 그뿐이랴. 자신이 속한 캠퍼스 상황조차 잘 모른다.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학생들은 정치에 관심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학 사회 자체가 생존의 문제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자신의 상황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그런 현실 속에서 살아간다. 대학이라는 곳은 이미 직업전문학교로 전락한 지 오래되었다. 정문을 들어서면 ‘몇 학번 누가 어디에 취업되었다. 축하합니다.’하는 펼침막이 가장 눈에 잘띈다. 학생들은 학교에 들어설 때부터 취업에 대해서 강요를 받는다.
믿음이라고 다를쏘냐? <슬램덩크>에서 정대만이 그랬다. “왼손은 그저 거들 뿐!” 믿음은 단지 성공을 향해 거드는 것일 뿐, 성공을 향한 들러리로 전락했다. 믿음도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데 하물며 정치라고 다를 것이 있으랴. 그래서 '아 그렇구나!’ 라는 공식이 성립된다. 이 말은 정치적으로 소신있는 사람이 발언을 하면 거기에 휩쓸려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집에서는 부모님으로부터, 캠퍼스에서는 간사로부터(?),이랬다가 저랬다가 왔다 갔다 한다. 목자 잃은 양같이 방황한다. 심지어 “그런 거 꼭 알아야 돼요?”라고 반문하는 학생들도 있다. 386세대가 들으면 펄쩍 뛸 이야기겠지만,안타깝게도 정치는 이들의 삶에서 저 멀리 안드로메다의 별과 같은 이야기가 되었다.
니는 좌파가? 우파가?.... 어딘데?
작년 공동체 안에 붉은 망토를 두르고 붉은 심장을 가진 보수적 성향을 띤 아이가 혜성처럼 등장했다. 모 후보를 노무현 전 대통령 딱까리(?)라고 부르고 그 후보의 공략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기 시작했다. 후보 단일화 때는 싸잡아서 비난했다. 요즘은 ‘댓글 때문에 대통령이 안 됐다는 게 말이냐 되냐?’ 라며 SNS에 글을 올리고 극우적 성향을 띤 단체의 글들에도 자신만만하게 ‘좋아요’를 누른다.
그러자 공동체 안에 묘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좌로 우로 나뉘기 시작했다. 중도의 무리들이 있기는 했으나 확실히 나뉘었다. 정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면 “그건 아니쥐!!”라며 조금씩 언성이 높아지거나 상대방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소수인 한쪽이 다수에 의해서 눌리긴 했어도 정치적 성향으로 공동체가 술렁인 것만은 사실이다. 파(派)를 나누는 것은 공동체에서 상당히 위협적인 일이라, 나는 학생들을 만나보았다.
먼저, 보수적(?) 성향을 띤 학생을 만났다. 아니다 다를까, 열과 성을 다해 자신의 견해와 지금의 문제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모 후보의 배경, 발언 등을 문제 삼고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의 공약은 이래서 좋다고 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후, “너와는 다르게 생각하는 아이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니?”라고 물었다.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그 애들이 잘 몰라서 그래요.” 인신공격까지도 예상을 했으나 그러지는 않았다. 그다음, 진보적(?) 성향을 가진 학생들을 만나보았다. 이들 또한 “저네들은 잘 모른다. ”라는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양쪽에서 공통적으로 들었던 말은 “잘 모른다.”였다. ‘잘 몰라서...’란 말은 자신이 지지하는 곳과 상대방이 지지하는 곳에 대해 잘 모른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전체 모임 때 정치에 대해 한번 나눠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하여 작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 LGM’을하게 되었다. 들어는 봤나, 정치 LGM! 내가 학생 때는상상도못하는모임이었다. 당시는 6개대 사태 이후라 정치나 사회에 대한 언급조차 조심스러울 때였다.
사실 이 정치 LGM의 취지는 특정 후보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히는 그런 모임이 아니었다. 서로의 대한 입장의 차이가 있기에 서로가 지지하는 후보가 어떤 공약을 내걸었는지, 그 공약이 상대방 후보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조사해서 발표하는 자리였다. 또한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가 어떤 사람인지를 ‘잘 모르는’ 상대방을 위해, 서로가 서로에게 알려주는 자리였다. 한쪽으로 편향 된 아이들은 소수였고(그러나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앞에서 밝힌 ‘아 그렇구나’ 부류의 사람들이어서 이들을 통해 서로에 대한 입장, 객관적인 정보들이 공유되어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기를 바라는 취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