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ri211_1312_무례한기독교교양있는그리스도인.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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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민 (울산대97)

주민등록등본에 여자가 셋. 저항과 도전, 인문학적 상상력과 구체적인 생으로 하나님 나라를 펼쳐내는 직장인이자 청년부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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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쟁을 중단하고 조속히 복귀하라, 민생을 챙겨라. 역사의 뒷 장에서 살아나온 노회한 정치인이 종편에 나와 목청을 높인다. 자꾸만 내 돈을 뻤고 때리고 괴롭히는 사람 있어 소리 빽지르고 발버둥 치는데, 싸우지 말란다. 싸우는 건 나쁜 거라며 맥락을 살피지 않고 둘 다 혼낸다. 싸우지 말라고 야단치는데 큰 놈이 작은 놈 뒤통수를 계속 친다. 진퇴양난이다.

시국이 엄중하다. 욕을 부르는 시국이다. 정의는 온데간데 없고, 불의가 득세한다. 정치와 종교, 자본의 권력을 쥔 자들은 혹세무민하며 사람 위에 군림한다. 우리는 마냥 수주대토(守株待兎)하며 정의를 기다려야 하는가.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받은 민주주의처럼, 노력과 값 지불 없이 받은 은혜처럼 공의와 정의도 그냥 넘쳐흐르게 될 것인가. 그러므로 우리는 입을 봉인한 상태로 범사에 감사하며 지내야 하는가.

욕 하면 나쁜 놈, 웃으며 감사하면 착한 사람일까. 늘 웃고, 매사에 감사하고, 많은 돈을 헌금 하면서 불의와 부정과 부패로 옷 입는 사람들을 우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우리들은 사람과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는 이 시대의 지도자들을, 정치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반응해야 할까. 슬프게도 많은 사람이 하나님이 세상과 역사를 통치해 나가시는 방식에 대해 큰 관심이 없는 것처럼, 우리네 삶의 양태를 결정하는 정치에도 무관심한 것 같다.

그래서**《닥치고 정치》**다. 부실한 팩트와 종교에 가까운 신념, 몰역사성과 허울 좋은 양비론이 범람하는 시대에 김어준은 한 여름 생수, 한 겨울 호빵이었다. 호불호를 떠나, 그 지루한 높은 이들의 정치를 재미있는 참여의 정치, 시민의 정치로 바꾸어 놓았다는 점에서 난 그를 높이 평가한다. 그는 잡스 와 손잡고 대한민국 정치 지형을 바꾸어 놓았다. 관(官)의 정치개입 같은 심각하고 강력한 역풍을 불러오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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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삼류의 저급한 욕지거리와 조소, 비아냥거리고 잘난 척하는 태도를 수용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우리들 곁에 더). 허나 김어준은 이 논쟁의 본질을 정확히 짚어낸다. 태도가, ‘애티튜드’ 그 자체가 콘텐츠라는 주장과 확신. 그리하여 <나는 꼼수다>의 광풍이 불었다. 친절하고 고상하고, 착하고 대범한 우리들 곁 평범한 악(惡)의 민낯이 드러났다. 사람들은 그 입을 주목했다. "쫄지 마!”에 용기를 얻었고, 정보는 노래로 회자되었으며, 정치는 몸을 굽혀 좁은 문으로 들어왔다.

같은 기간에 교회는 더욱 바닥으로 치달았다. ‘고소영’ 정부의 탄생 때부터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다. 교회 조직이 온갖 욕망의 정점에서 작동했다. 겸손하고 온화하며 좋은 말만 하는 큰(?) 교회 지도자들이 돈과 권력과 섹스, 부정과 부패 앞에 힘없이 스러졌다. 전병욱, 오정현, 조용기 사태는 한 단면에 불과했다. 정보기관의 파트너로 십알단이 활약했고, 교회 장로 목사를 결사옹위하는 기독교 연합체의 메일이 무차별 살포되었다.

이리 떼 가운데서 (마10:16) 우린 어떻게 살아야 할까. 갈등과 분열의 시대에서 성도들은 어떤 태도와 신념으로,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 것일까. 그리스도인으로 건강한 시민의식과 사회참여 방식은 무엇일까. 이런저런 책들 쥐락펴락 하다 유레카 외치게 한 책을 찾았다. 정치, 경제, 사회, 교육 같은 거대 담론에서부터 결혼, 동거, 동성애, 이혼, 낙태 같은 오늘날 우리의 신학적 문제에 이르기 까지, 갈등의 지점에서 우리 성도들이 취해야 할 바람직한 자세가 무엇인지에 대해 아주 깊이 숙고하고 있는 책. 바로 **리처드 마우의《무례한 기독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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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밷전 3:15-16) 를 시민교양의 전부라고 표현한다. 이를 통해 신실한 믿음이 공손함과 양립할 수 있다고 말한다. 친절하고 온유한 정신을 견지하는 동시에, 강한 신념을 지키는 것은 **신념 있는 시민교양(convicted civility)**의 계발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므로 애써 노력해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독교적 시민교양은 상대주의나 민족주의와 다르며 복음전도 전략에 국한되지 않는다. 저자는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고 그리스도의 연민에 동참하면서 하나님의 샬롬이 완성되는 그 날까지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할 필수 덕목으로 기독교적 시민교양을 요청한다. 태도와 언어생활, 다원주의와 민감한 성문제 그리고 지옥의 개념과 타종교와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시민교양은 반드시 그리고 신중히 작동되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나아가 세속적인 직장과 기관, 사회 속에서 기독교적 교양을 바탕으로 공적 리더십을 발휘할 것을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