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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민(관동대92)

강릉IVF에서 20년 간 간사로 사역했습니다. 지금은 아내와 대학생인 아들 세 명과 함께 강릉에 살면서, 사임 후 개척한 서로지음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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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시험을 당할 때 (약 1:2-4)

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야고보서 1장 2-4절

오늘 우리가 읽은 야고보서의 말씀은 비현실적으로 들립니다.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라는 이 말씀을 새번역은 “여러 가지 시험에 빠질 때에, 그것을 더할 나위 없는 기쁨으로 생각하십시오”라고 번역합니다. 시험에 빠지든 당하든 그것을 기쁘게 여길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기쁘게 여기라는 말은 우리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얘기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야고보는 서신서 저자들 중 가장 현실적인 사람입니다. 말보다 직접적인 행동을 요구하고,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며 행함으로 믿음을 보이라”고 말하는, 아주 실천적인 행위를 강조하는 저자입니다. 그런 사람이 “시험에 빠질 때 그것을 더할 나위 없는 기쁨으로 여기라”고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기뻐하라는 말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야고보에게는 그것이 인생의 의미를 푸는 실마리였습니다. 그는 굉장히 현실적인 통찰로 ‘인생’을 진단하고 있는데요, ‘인생은 여러 가지 시험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라는 단어를 표현한 헬라어 ‘포이킬로스’의 기본 뜻은 ‘많은 색의, 다채로운’인데요. 마태는 마태복음 4:24에서 예수님의 치유 사역 중 ‘온갖 종류의’ 질병을 묘사할 때 이 말을 사용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후서 3:6에서 인간이 취하는 ‘여러 가지’ 욕망을 표현할 때 사용했고,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4:10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주어졌음을 말하면서 사용했습니다. 야고보는 ‘인생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여러 가지 시험을 마주하는 장’이라는 굉장히 현실적인 진단을 내린 셈입니다.

정말 그렇지 않습니까?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다가 한 무리의 강도떼를 만나 습격을 당한 사람처럼, 우리는 삶에 불쑥 끼어든 불청객 같은 시련에 시험을 당합니다. 그런 일을 기대하거나 대비가 되어 있지 않은데도 말입니다. 불청객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우리에게 사자처럼 달려듭니다. 그때 우리는 놀라서 “이게 뭐지?”하며 소스라치고, 당혹감에 휩싸여 “왜 이런 일이 나한테 일어난 거지?” 질문하며 괴로워합니다.

갑작스러운 시련을 당할 때, 그 이유가 믿음이 없어서라거나 기도를 안 해서, 무언가 모르는 죄를 지어서라는 식의 얘기는 욥의 세 친구들이 욥에게 했던 조언처럼 아무런 도움도 안 될 뿐만 아니라 성경적인 진단도 아닙니다. 오히려 야고보의 진단이 더 진정성 있는 현실적인 진단인데요. 우리의 인생이,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시험과 고난을 당하는 여정이라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이 진단이 개인적인 사견이 아니며 그리스도인이 모두 공유하는 진리’임을 밝히는데요, 3절을 보면 그것을 “너희가 앎이라”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압니다. 그리스도인만이 아니라 비그리스도인도 ‘인생이란 여러 가지 시험과 고난의 이야기’라는 이 보편적인 진리를 알고 있습니다. <오르막길>이라는 노래에 ‘이제부터 웃음기 사라질 거야….’라는 가사가 나옵니다. 우리 인생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죠. 인생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 순간 장밋빛 인생이 펼쳐지리라 막연히 기대했을지 모르지만, 이내 우리는 사뭇 다르게 펼쳐지는 현실과 대면합니다. 영화 기생충에서는 “아들아,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라는 명대사가 나오는데요. 하지만 영화의 결말처럼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죠. 그게 현실입니다.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펼쳐지는 장소가 바로 우리의 인생입니다. 때문에 야고보는 여러 가지 다양하고 복잡하고 뒤얽혀 있는 시험을 당하는 삶을 인생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인생에 대한, 이보다 정확한 묘사가 어디 있을까요?

이처럼 우리의 인생을 현실적으로 진단하는 일에는 우리 모두 동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더할 나위 없는 기쁨으로 여기라는 것까지는 좀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이 구절을 좋아하는 그리스도인은 별로 없을 거예요. ****그러면 야고보는 이를 왜 기쁨으로 여기라고 할까요? 3절을 보겠습니다.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야고보는 시련을 믿음과 연관지어 ‘믿음의 시련’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인생의 시련을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의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는 시험대, 즉 거울로 바라봅니다. 야고보는 ‘시련이 우리의 믿음을 위험에 처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타협하지 않고 정직하게 일하는데 승진도 안 되고 회사에서 잘릴 위기에 처하게 될 때 믿음은 시험대에 오릅니다. 예수를 믿지만 가정의 불화가 끊이지 않을 때 믿음은 시험대에 오릅니다. 슬픔이나 고통, 실망, 무엇이 되었든 그런 폭풍우 앞에서 우리가 가진 믿음이 무너져 버리는 일은 너무나 자주 반복되는 현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심을 믿는다고 하지만, 믿음이 시험을 당하기 전까지는 정말 견고하게 뿌리를 내렸는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상황이 우리 믿음을 조롱하는 듯 보일 때, 잔인한 삶의 현실이 그분의 아버지되심을 부인할 때, 전능하심에 회의를 품게 하는 그분의 침묵을 만날 때, 단순하고 우연하고 무의미하고 뒤죽박죽인 사건들로 인해 과연 질서를 유지하는 창조주의 손길이 있을까 의심을 품을 때 인생의 시련들은 우리 믿음의 진정성을 시험합니다.

사랑해서 결혼한 부부의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될 때까지 사랑할 거’라는 믿음이 깨어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이제부터 웃음기 사라질 거야’라는 노래처럼, 곧 시험대 오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달라도 너무 다른 취향과 습관들, 이해할 수 없는 대화방식, 자녀 교육에 대한 입장 차이, 한쪽 혹은 양쪽 부모를 대할 때 느끼는 미묘한 간극과 서운함, 실망감 등 생각지도 못했던 시험이 닥칩니다. 서로에 대한 믿음의 진정성이 의심받는 것이죠. 그럴 때 드러난 면을 정직하게 대면하면서 이해하려 해 보지만, 이해가 안 되는 게 많습니다. 이해가 안 되면 인정해야 하는데, 그렇게 인정하는데 이르기까지는 참고 견디며 기다리는 인내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인내를 통해 그 과정을 제대로 통과할 때 관계는 좀 더 단단해지고 믿음은 비로소 진정성을 갖게 됩니다.

이런 믿음이 주는 안정감은 정말 소중하고,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그 과정에서 형성된 인내라는 열매는 더할 나위 없는 기쁨입니다. 왜냐하면 ****일관된 헌신을 계속 이어가게 하기 때문입니다. 인내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한결같은 삶을 살기 위해서 꼭 필요하며, 그분이 오실 때까지 우리를 덜 동요하게 하고 덜 변덕스럽게 합니다. 그렇기에 ****믿음의 여정에서 인내는 너무나 중요합니다.

하지만 ****‘믿음의 시험을 받은 경험이 인내를 만들어 냄을 너희가 안다’고 말한 것처럼, 우리는 인내라는 열매가 한순간에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음을 압니다. 그것을 잘 알기에 여러분이 참고 견뎌온 지난 세월들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오래 기다리셨나요? 참으셨나요?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인내는 억만금으로도 살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할 때 기쁘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시험을 기쁘게 여겨야 할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4절을 읽어 보겠습니다.